10대를 지나 20대를 거치고 30대를 거치며 사회경험이 늘다 보니 여러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매일 같이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사적/공적인 관계를 맺으면서 가장 우선 살펴보게 되는 것이 ‘그 사람을 신뢰할 수 있는가’ 라는 점이다. 여기서 신뢰란 단지 사적인 비밀을 지켜줄 수 있는지만은 아니다. 저마다 각자의 기준으로 ‘신뢰’의 정의를 내릴 수 있겠지만, 내 경우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란:

  • ‘차이’를 ‘틀림’이 아닌, ‘다양성’으로 인정하는 사람
  • 세속적 형식에 (지위, 나이, 학력, 부 등) 의존하여 권위를 앞세우지 않는 사람
  • 자신의 주장을 강요하지 않고 남의 얘기를 듣고자 하는 사람
  • 컨텐츠의 힘을 인정하여 이를 사람과의 관계, 자기 발전의 기준으로 삼을 수 있는 사람
  •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인정하고 이를 채우고 자기 성찰하려 노력하는 사람

특히 우리 모두 완전할 수 없기에 마지막 다섯 번째가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한다. 그렇다면 누구를 신뢰할 수 있나? 그 중 한 가지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말은 주변 인물들, 주변 친구들을 보면 안다는 것이다. 누구나 자라면서 부모님께 한번쯤은 “좋은 친구 사귀어라”라는 말씀을 들은 적이 있을 것이다. 항상 적용되는 것은 아니나, 그 만큼 우리나라에선 이미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것이 사람 판단의 중요 기준으로 작용하고 있다. 오늘 새 직장, 새 사무실을 차린 어느 누구는 일을 맡길 자기 주변 인물들을 공개했는데, 이 경우엔 앞서 그 말이 정말 꼭 들어 맞는 것 같다. 그 ‘친구’들이 누군가?

자리 욕심에 거짓말을 둘러대는 사람,
얼토당토 않은 말로 자기 합리화하는 사람,
누구나 보더라도 뻔한 거짓말을 서로 주고 받으며 얼렁뚱땅 넘기려 하는 사람,
그리고 이런 식으로 처세하는 사람들을 곁에 두고 일하려는 사람,
그러면서도 ‘원칙’을 강조하며 손바닥으로 햇볕을 가리려는 사람

자신 스스로 ‘나는 이런 사람이로이다’ 하고 보이는 것에 절로 웃음이 나온다. 게다가 이를 비판한다는 사람들도 정신 못차리고 비슷한 자리 욕심에, 아무 가치기준 없이 내편, 니편 나누며 각자 무리를 만들고 이끌어 앞길을 개척하려 하니 한숨만 나온다.

앞으로 5년간 정말 두 눈 똑바로 뜨고 정신차려 살아야 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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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나온 재밌는 칼럼 링크를 걸어둔다. 대한민국, 참 이상해지려 한다.

[홍성태의 ‘세상 읽기’] 진정한 ‘실용’과 ‘능력’이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