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파일들을 정리하다 다시 들춰본 5년전 사스 경험담. 당시 박사논문을 준비하기 위해 북경으로 현지조사를 떠났던 나로서는 사스로 인한 모든 것이 도전의 연속이었다…먼저 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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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RS in Beijing (1)
– how it affected my research this spring
북경, 17 April 2003
북경에 온지 이제 13일이 지났습니다. 그와 더불어 중국정부에서 공식적으로 사스에 대한 발표를 한지도 대략 3주 가까이 되는군요. 사스에 대한 얘기야 워낙 신문, 방송에서 떠들어 대니 굳이 덧불일 얘기는 없군요. 단지 여기와서 일어난 해프닝이나 얘기해볼까 합니다.
4월 4일 에어 프랑스타고 파리 경유해서 왔지요. 런던을 떠나 파리 갈 때 까지는 별 느낌이 없었습니다. 출발전부터 사스가 홍콩, 남부 중국에서 기승을 부리고, 북경에서도 환자가 발생했지만 아직 심각한 상황은 아니라는 중국정부의 발표를 보고 떠났기 때문일까요…발표 그대로 믿을 수는 없었지만 믿고 싶은 마음으로 떠났기 때문이겠죠. 어쨌든 북경 상황이 심각하든 아니든 그곳은 수정이, 울 마나님이 계신 곳이니 즐거운 마음으로 떠났죠.
파리에 도착해서 다른 터미널로 이동, 출발 게이트로 가는데, ‘어, 직원들이 마스크를 쓰고 있네?’ 가 첫번째 반응이었습니다. 그것도 아주 두툼한 마스크… 런던에서 하루 종일 돌아다니며 구할려고 해도 구하지 못한 그런 종류의 마스크…쩝. 중국을 가는 나도 임시방편용 종이마스크 뿐이 못구했는데… 알고 보니, 출발 게이트 근방에는 중국이나 그 방면으로 갈려는 손님들이 많더군요. 찝찝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비행기내에서부터 마스크 쓰고 와~~’ 라는 수정이와 아버지의 말을 한 귀로 흘리면서 왔는데, 이거 정말 마스크 써야 되나 라는 경각심이 들더군요. 하지만, 일단 무시했습니다. 대부분이 중국사람들이었지만, 다른 유럽인, 미국인들도 여럿 보이더군요. 중국사람들이야 집에 돌아가는 거지만, 저 인간들은 왜 가나 싶은 생각도 잠시 들었습니다. 여정 내내 잠만 잤습니다. 시끄러운 중국사람들 얘기는 귀마개로 차단시키면서…
북경에 도착했습니다. 도착하니, ‘어라, 유럽.미국인들 기내에서 빠져 나오자 마자 마스크 쓰네?’ 공항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은 어떤가 살펴 보니 마스크 쓰는 사람 하나도 없더군요. 그 넓은 공항에서 사람 많지도 않은데 너무 유세떠는 것 아닌가 하며 무시했습니다. 현지에서 사는 사람들도 있는데, 잠시 여행오면서 너무 티내는 것도 별로 보기 좋은 것은 아닌 것 같은 생각에 그냥 씩씩하게 짐 챙겨서 택시타고 북경집으로 왔지요. 마나님 반갑게 만나고 이,삼일 푹 잘 쉬었습니다.
4월 8일 화요일, 함께 조사작업하기로 한 중국사회과학원 연구소에 갔습니다. 참고로, 이번에 논문자료를 수집하러 왔거든요. 함께 북경내 주거지역 몇 지역 선정해서 4,50가구 면접조사할 예정으로 온 것이지요. 연구소에 들러 작년에 만났던 사람들 다시 반갑게 만나 이 얘기 저 얘기하는데, 사스에 대한 경각심은 그 다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모두들 태연해 보였지요. 그래서 조금 안심. 단지 걱정거리는 함께 연구할 다른 연구원 한명, 2주 동안 홍콩으로 출장갔는데 13일 돌아오면 함께 회의하자 하더군요. 그 사람, 바로 수정이와 저에게는 요주의 대상이 되어버렸습니다. 이 때 까지 사스에 대한 그들의 태도는 어느 한 사람의 말로 집약되었지요…”사람 목숨이야 하늘에 달려 있으니, 사스에 걸릴 사람은 어케 해도 걸리고, 안 걸릴 사람은 안 걸린다. 다 운명이다…” 이궁… 그러면서도 조금 뒤에 조용한 목소리로 (이 친구, 좀만 비밀스러운 얘기할 때면 목소리가 괜시리 낮아집니다. 별 비밀도 아니면서…) “사회과학원에서도 두 명 병원에 실려갔다…” 북경당국, 중국정부의 대응태도가 걱정되더군요. 홍콩이나 다른 나라 같았으면 관련 직원들 격리시켰을 겁니다. 아까 얘기한 홍콩출장후 돌아올 예정인 직원과도 일주일 유예기간 두고 미팅 날짜 잡았을 겁니다. 하지만 저도 조사일정이 빠듯한지라 걱정은 되면서도 뭐라 말을 하지 못하겠더군요. 정말 이러면서도 박사과정을 해야 하나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으~~
일주일 지났습니다. 그 사이 많은 변화가 있었지요. 다들 아시겠지만… 중국, 북경, 홍콩, 사스환자 발생은 수그러들지 않고 계속 일어나더군요. 북경정부도 경각심이 들었는지 일제 방역활동 지시하고, 보건위생지침 같은 거 주거지역에 게시하고… 북경에 있는 한국사람들 한달전부터 복용하기 시작한 반란건이라는 감기약 (동인당에서 나온 중의약인데 면역력 강화에 쬐금 보탬은 된다는군요), 중국사람들도 찾기 시작한다는 얘기가 들리더군요. 위에 얘기한 그 ‘운명론자’, 일요일 식당에서 함께 저녁먹기로 했는데, 토요일 밤 전화오더니 ‘감기기운이 좀 있고, 두통이 있는데, 사람많은 식당가서 저녁먹기는 좀 그렇네. 연기하자’라고 하더군요. 이제서야 이 친구도 조심을 하기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제 조사작업은 일단 예정대로 진행되는 듯 했습니다. 도와줄 학생도 두 명 물색해 놓고. 일단 준비를 계속 했습니다. 사회과학원 연구실에서도 북경내 지역관리에게 협조공문 발송되었고… 사스파문에도 조사작업은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제 머릿속에는 ‘조사는 하지만 어떤 식으로 해야지 조사자, 조사대상자 모두 사스를 예방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한켠에서 진행되고 있었지요…
다시 사회과학원에서 15일 회의를 가졌습니다. 아까 언급한 홍콩출장에서 돌아온 사람, 멀쩡히 연구실내를 휘젓고 다니고 있었습니다. 마스크도 하지 않은채… 저랑 악수도 했습니다…홍콩에서는 악수도 안하고, 손만 흔들고 지나친다는데, 이거, 손을 씻어야 하나 마나… 그냥 위험을 감수하기로 했습니다. 근데, 결국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사스발병은 아니고… -_-a 북경정부에서 사스예방, 확산방지에 총력을 기울이느라 조사작업을 도와준다고 했던 지역관리들이 사스 지나갈 때 까지 미루자라고 한답니다. 그게 언제가 될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지역주민들도 외부사람들 만나기 꺼릴 거라면서… 중국의 일면을 여실히 보여주는 상황이었습니다. 불과 일주일 전까지는 정보통제하고, 사람들도 제한된 정보에 소문만 조금씩 접하면서 ‘설마설마’하고 있다가 이제서야 불이 붙은 것입니다.
연구실 연구실장, 회의가 지난 조금후, 저를 부르더니, 직원들 위해서 사스 예방약을 잘 아는 한의원에서 사올 건데 수정이거랑 네거랑 챙겨서 먹으라고 하더군요. 고맙더군요… ㅜ.ㅜ 일주일 전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사스 얘기하던 사람들, 이제는 모두 난리입니다.
이제 어케 해야 할 지 헷갈리는 중입니다. 논문방향을 대폭 바꾸어야 할지, 일단 쓸건 써놓고, 나중에 다시 조사작업 진행하면 빈칸 채워넣기 해야할지, 생각좀 해봐야 겠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건, 이후에 박사과정 회상할 때 저도 할 얘기 하나 생겼다는 것이지요…
북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