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5월, conference라고 하는 곳에 처음 발표를 하러 갔는데 그곳이 알바니아의 수도 티라나 였다. 사실 알바니아라는, 내게는 미지의 땅이 conference 장소라는 것에 더 ‘혹’했다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유럽 발칸 반도 서부에 이탈리아를 마주 보고 위치한 알바니아는 복잡한 그 쪽 정세만큼 복잡한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스에 인접한 발칸 국가 중의 하나. 이 나라를 다녀오면서 동유럽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답니다…

유럽 최빈국. 최근 90년대 중반까지 사회주의 독재 및 폐쇄적인 국가 운영…변화의 물결은 90년대 후반부터라는데, 수도인 티라나에서 오래 체류한 사람에 따르면 예전과는 달리 안전한 느낌이 들며 정이 간다고 한다. 아래 사진에 보이는 곳은 티라나 국제 공항 – 일국의 첫 인상을 주는 국제 공항은 나의 모든 예상을 벗어나는 모습이었다. 도착후 비행기에서 공항 청사까지 가는 버스의 창문은 대부분 깨져 나가 없었으며 때마침 내린 빗발이 버스 안까지 몰아치기도 하였다. 지극히 가난하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역설스럽게도 그 자체가 정감을 갖게 하는 상황이었다. ‘우리는 이렇다’ 라고 자신있게 공개할 수 있는 그 여유가 느껴진다고 할까…

도심부 버스정류장. 도시 거리를 점유하는 차량이 그 다지 많지 않아서 그런지 체증은 느낄 수 없다. 재밌는 인상 세 가지:

하나는, 무수히 많은 벤츠 자가용. 최빈국 이라고 하는 이 곳의 차량의 상당수가 벤츠이다. 그것도 최신 차종이 다수인… conference에 참여한 많은 사람들이 의아하게 느끼며 자문을 하던 것 역시 왜 이리 벤츠가 많을까 하는 것이었다. 현지인에게 물어보아도 명쾌한 답을 얻을 수 없었다.

다른 하나 – 멀리 보이는 간판의 LG 처럼 여기마저 기업은 진출해 있었다. 공항 가는 가도에서 보았던 공사중인 현대-기아 공장(?)처럼, 한국 사람이 거의 없을 것 같은 이 곳에 상품은 이미 와 있었다.

세번째 – 동양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역설적으로 그래서 더 편한 느낌을 받았다. 지나가는 아이들이 내 앞에서 ‘가라테’ 동작을 보이며 지나가는데, 서유럽에서 느끼던 ‘놀림’이라기 보다는 ‘낯선 친근함’을 갖게 된다. 얼마전 ‘Karate Kid’가 유행했다고 한다. 그래도 일본 단체 관광객은 여기에도 있었다. 무서운 사람들이다…

수도 티라나 도심 가도를 살짝 벗어난 이곳. 시장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부산한 사람들… ‘여기도 도시구나’

도심내 길거리 시장. 좁은 골목으로 끊임없이 다니는 통과 차량, 장보러 나온 사람들 (사진에 보이는 것 보다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길가 상점에 쌓여 있는 물건들… 자본주의 상품경제로 이행하고자 하는 이 나라의 현 지점이 어디인지 조금은 느낄 수 있다고 할 수 있으려나…

아래는 티라나에서 가장 높은 건물 중 하나라는 곳에 올라 도심 전경을 잠시 느껴 보았다. 어디선가 들려오던 사람들의 함성…무슨 소리인가 하고 잠시 의아해 했었는데, 축구장 관중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사진 오른쪽 상단을 주의깊게 보면 축구장 관중석에 앉아 있는 관중들이 보인다. 사회주의 건물 특유의 양식이 느껴지는 건물이 사진 하단에 보인다. 정부 청사 건물이라 했던가…지금은 헷갈린다…

티라나 (알바니아 수도) 시장은 화가였다 한다. 신장 190센티미터 가까이 될 것 같은 육중한 몸의 이 남성 시장이 conference 개.폐회때 참석하여 연설도 하였는데 기억에 남는 말: “My English is as broken as the city of Tirana”

온 몸에서 풍기는 예술가 특유의 고집스러움과 여유 – 혼탁하고 부패한 알바니아 정치계에 진출하여 유서깊은 도시에 생명을 불어넣고자 하는 사람이 필요한 두 가지 덕목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 역시 ‘부패’ 사유로 조사당하는 상태라는데, 그 자신은 다른 어떤 이보다는 덜 부패하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재정이 극도로 부족한 상황에서 도시에 변화를 가져오고 사람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고자 하는 이 시장이 착수한 두 가지. 건물 전면에 지중해에 어울리는 파스텔톤의 페인트를 칠하는 것이 그 하나이고, 다른 하나는 사진에 나온 ‘강’가 단장 – 아무리 보아도 강이라 할 수 없는 이 ‘하천’을 여기 사람들과 지도는 고집스럽게 ‘강’이라고 지칭한다.

아래는 좀 전 사진에 나온 ‘강’의 보행자용 다리. 이 사진을 찍은 이유는 사실 이 다리를 기준으로 왼쪽과 오른쪽의 강이 큰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오른 쪽은 앞선 사진과 같은 깨끗함 그 자체를 유지하지만, 왼쪽부터는 온갖 쓰레기가 버려진 오염된 상태이다. 재정이 없어 조금씩 조금씩 강가 정리를 하고 청소를 하는 것이라 아직까지 이 다리 왼편까지는 손길이 미치지 못한 것이라 하는데…

시장에 따르면, 쓰레기를 아무 곳에나 버리는 습관은 90년대 중후반 ‘자유’의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라 한다. 하고 싶은데로 하는 것이 자유로 인식되면서 쓰레기 버리는 것도 마음대로 한다는데… 하여튼, 재밌는 것은 새롭게 단장된 오른편 강가에는 더 이상 사람들이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다 한다. 사실 이 강가에는 불법 증축된 상가, 주거 건물이 점령하여 강이 보이지 않았다 한다. 그 많은 건물들을 어느 날 일제히 철거하여 강을 복원하였다 한다. 그 얘기를 듣고 갑자기 우리나라 서울의 모 시장이 생각이 났다…

경제가 낙후되면서 버려진 공장. 도심을 벗어나 1시간여 가다 보면 보이는 곳이다. 을씨년 스런 모습. 언제 다시 손길이 미칠지…

알바니아가 직면한 도시 문제 중의 하나가 수도 티라나 같은 도시 주변에 광범위하게 번지는 무허가 주거용 건물이라 한다. 사진에 보이는 모든 건물들이 무허가 건물이라 하는데, 내가 생각하던 무허가 건물에 비하면 이들 건물은 훨씬 상태가 양호하다. 무허가로 지어졌기에 우후죽순 지어지면서 도로 개설, 수도전기 연결 등, 무허가 주택지역 특유의 문제가 여기서도 반복이 된다 한다. 대부분 농촌에서 이주한 이농민들이 짓는다 하는데, 먼저 어느 한 가족이 정착해서 기초를 닦고 일층을 지으면, 그 가족의 형제 가족이나 친척 가족이 오면서 그 위에 한 층을 더 짓고, 다시 한 층을 더 짓고 정원 꾸미고, 담 쌓고 하면서 완성이 된다 한다. 보이는 집 한 채 마다 몇 세대가 함께 사는 모양이다.

도시 곳곳에 쓰레기, 폐품이 방치되어 있던 것 역시 알바니아에 대한 인상중 하나였다. 차를 타고 지나가다 얼핏 본 폐차. 길가에 코 박고 놓여 있던 차는 언제 수거될 지 모를 일이다.

이름을 잊은 어느 알바니아 소도시. 아직 개발이 안되었기에 역설적으로 그 만큼 자연이 보호되고 오래된 도시의 정취가 간직되어 있는 알바니아. 버스타고 지나치던 자연 산천, 잠시 들른 사진의 도시, 지중해로 인한 타고난 온화한 기후, 외부인에게는 아직 과묵하지만 따스하게 웃을줄 아는 사람들. 그 모든 것이 일주일도 안되는 짧은 시간 동안 나를 알바니아에 푸욱 빠지게 하였다.

위의 소도시 사진을 찍은 곳에서 조금 더 걸어올라가면 정상에 위치한 자그마한 성을 만나게 된다. 2차대전말기 알바니아 공산주의자들은 독일군에 대항하기 위해 빨치산을 조직하여 무수히 많은 전투를 벌였다고 한다. 이 성안에는 그 당시 썼던 빨치산 무기 및 노획한 독일군 개인용 화기가 전시되어 있는 자그마한 전시관이 있다. 또한 그 성안에는 무수히 많은 탱크와 대포 등이 보관되어 있는데 2차대전 당시 독일군이 비축하였다가 퇴각하면서 그대로 남겨진 것이라 한다. 그 무기들이 왜 그대로 지금까지 보관되었는지는 알다가도 모를 일… 사진에 보이는 것은 그 대포중 하나의 포신…

같은 성 맨 위에 올라가니 뜻밖에도 비행기 한 대가 놓여있다. 그것도 녹슨 미군 비행기. 미군용기에 쓰이던 별 표시가 선명하다. 그 비행기가 어떤 연유로 이 성에 남겨진 것인지, 불시착한 것인지는 묻지 못했다…

알바니아 전통 음악을 할아버지 악단이 연주하고, 10대 소녀들이 전통 춤을 선보이던 저녁 만찬. 수도 티라나에서 1시간여 버스를 타고 간 이 마을에서 가진 저녁은 무척 즐거운 시간이었다. 단지, 10대 소녀들이 관광객을 위해 춤을 선사하는 과정은 즐거움 자체로 받아들이기에는 조금 주저하게 한다. 연주, 노래, 춤이 이어지다 어느 순간 참석자들마저 한데 어우러져 손에 손을 잡고 춤을 춘다. 물론 나를 포함한 절반의 사람들은 꿋꿋하게 자리를 지켰지만…

수도 티라나를 벗어나 두어시간 버스를 타고 가면 도착하는 어느 작은 오래된 도시 (마을?). 이름은 잊었다… 공터에서 노는 아이들을 보니 정겨움이 느껴진다. 축구는 여기서도 인기 종목이다.

Conference가 끝난 후 알바니아 남부 해안도시로 1박 2일 관광을 하러 가던 도중 잠시 들른 정교회 (Orthodox Church) 사원… 재정이 부족하여 보수비가 없어 수리를 제때에 못해 날이 갈수록 황폐해진다는데… 사원 내부 예배당에서 사진을 찍으려 들이미는 사람들에게 엄청 화를 내던 사원지기 할아버지가 지금도 생각난다. 호사스런 관광객에 대해, 알바니아 근대사를 몸소 겪은 할아버지는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도착한 곳이 사진의 해양도시. 알바니아 사람들이 많이 찾고, 게다가 인접한 그리스 사람들도 간혹 찾는다는데…파격적인 1박2일 여행비 (약 8만원…)에 포함된 조건이 1박 2일 숙박 및 식사 비용, 교통편이었다. 숙박은 뜻밖에도 오성급 호텔… 그 날 밤은 해안이 훤히 보이는 발코니 딸린 침실에서 호사스런 밤이었다.

동구권으로 지칭되는 지역중에서 처음으로 발을 디딘 곳은 알바니아. 유럽에서 최빈국이면서 이제 개방의 길로 들어서는 이 나라. 문제 많고 말 많은 곳이지만, 사람들에게서 따스함이 느껴진다. 아직 산천이 아름답게 보호되어 있지만 언제 망가질지 아무도 모를 일…